내차몰고 제주도 구경가기
몇년전인 2011년 7월 마지막주 일주일간 안가겠다는 애들을 설득해 내차를 몰고 제주도로 휴가를 다녀온 기록입니다. 그곳 제주도는 한라산 꼭대기부근을 제외하고는 연일 땡볕에 폭염날씨였는데 돌아와보니 그간 서울은 수해로 쑥대밭이 되었다가 많이 회복되었더군요.
사실 차몰고 서울에서 제주도를 가게 되면 비용은 항공편보다 더 소요되고 제주도 현지에서의 렌터카 비용은 절약됩니다.
저희가족은 해외에 근무할 때 자동차여행을 많이 다녔습니다. 스위스에 근무할때는 서유럽 동유럽 거의 모든 나라를 샅샅이 뒤져가며 여행하기도 하였고 중국에 있을때도 한국에서 가져간 SM5를 몰고 대륙을 몇날 몇칠씩 종횡하기도 하였고 미국에서도 렌터카인 포드 토러스로 온가족이 미국서부를 열흘간 주유한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적은 땅덩어리이고 이마저도 분단국가라 실제로 섬나라인 우리나라는 반나절을 운전해서 어디로 가던 끝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좁은 땅마저도 제애들은 최장거리 여행이 속초인지라 한번도 안가본 남도지방까지 차로 여행하며서 보여주기 위해 이번 휴가를 기획한 것입니다.
서울에서 전남 장흥 노력도항구까지는 바로가면 4시간에서 4시간 반이 소요됩니다만 바로 가지 않고 중간 중간 구경하면서 하루를 잡았습니다. 서울에서 오전 11시에 출발해 광주시내를 거쳐 보성차밭에 도착하였습니다. 각종 광고 및 드라마에 나오는 보성차밭은 관광지화되었고 입장료도 있습니다. 도착해보니 많은 관광버스며 관광객들이 많았습니다.
광고에서 나오는 것처럼 멋있는 녹차밭풍경은 800미터정도 등산하여 올라가야 하는데 식구들이
너무 덥다고 올라가는 것을 싫어해 아래쪽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배경그림이 별로입니다. 이곳에서는 녹차수제비 녹차 짜장면 녹차아이스크림 녹차과자 녹차화장품 등등 녹차로 개발한 다양한 상품을 팔고 있더군요. 애들도 당연히 녹차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녹차과자 한봉다리 사고 장흥 편백숲우드랜드로 출발했습니다.
편백숲에서 두시간가량 산림욕과 산책을 하였는데 여기다가 누드산림욕장을 만든다네요. 공기가 확실히 틀립니다. 이곳에서는 황토방이 군데군데 있어 임대해주는데 실제 가보니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묵으면서 난치병들을 치료하고 있더군요. 이어서 저녁시간이 되어 장흥읍내에 있는 음식점으로 가서 15000원 짜리 한정식을 시켜먹었습니다.
사진에 나오는 음식을 다먹으면 다시 찌개와 각종 젓갈 김치 생선구이 밥등이 또 나옵니다. 15000원으로 입이 호강합니다.
저녁먹은 후 근처 모텔에서 숙박하고 다음날 아침 8시반 배를 탔습니다. 노력항-제주성산포항 구간의 운항시간은 1시간 50분으로 제주항로중 가장 빠릅니다. 작년에 오픈하였는데 빠른 운항시간때문에 대박이 터져 올해는 배한대를 더 도입했네요. 배는 도버해협을 운항하는 배로 여객은 700명 차량은 130대를 실을 수있습니다. 7, 8월 여름 성수기는 1달전에 거의 모든 표가 매진된답니다.
저희가 출발할 때도 그시골 노력항 근방이 차선적을 예약하지못한 승객들 차가 구석구석에 수백여대 이상 주차해 있더군요.
제주는 이십수년전에 신혼여행으로 다녀왔고 저는 그간 회의차 골프치러 여러번 드나들었는 데 와이프와는 이번이 23년만에 다시 찾으니 감회가 새롭네요.
콘도에 도착하여 방에서 바다를 조감하니 속이 다 시원합니다.
제주도는 그간 볼거리 즐길거리가 많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중국관광객들이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이튼날 말을 타러 갔었는데 말들이 힘이 딸리더군요 계속해서 관광객들을 실어대니.. 한쪽구석에 보니까 아주 지친 말들이 수액영양제주사를 맞고 있더군요
말을 탄후 올인 촬영장소로 유명한 섭지코지를 가봤습니다. 이곳도 내국인 관광객들보다는 중국관관객들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섭지코지해변
평지 분화구인 산굼부리
제주도 한라산 중턱 도처의 말목장들
이틀간은 제주도 함덕해수욕장에서 종일 해수욕을 하고, 제주도 맛집을 찾아다니고 여러곳을 다녀보고 올레길도 아주 조금 걸어보고 하니 어느덧 일주일이 다되었습니다. 애들도 처음과는 달리 이번여행을 좋아했다는 데 만족하구요. 제주도 안가본 곳이 그래도 많이 남았고, 한라산은 1200미터 고지인 어리목 부근산책으로 만족해야 했는데 백록담 등반을 했으면 하는 아쉬움은 뒤로 미룬채 서울로 귀가 했습니다.